생활속 이야기

건강그릇

뫼사자 2008. 7. 23. 00:28
놋그릇, 알고보니 ‘건강그릇’
식중독균 박멸… 독물질에 변색
놋쇠가 식중독균을 99.9%나 제거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전통 놋그릇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은 최근 “200ℓ 들이 수족관에 놋그릇이나 놋수저의 재료인 놋쇠 판(가로×세로 30㎝)을 넣은 결과, 40여시간 뒤 생선에서 비브리오균이 99.9% 제거됐고, 조개류 속 비브리오균도 48시간이 지나자 90%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실험을 총괄한 박용배 보건연구기획팀장은 “놋쇠를 넣었을 때 물이나 생선에 남는 구리의 양은 미국의 안전섭취량보다 훨씬 낮아 안전하다”고 밝히고 있다.

구리에 주석을 합금한 청동과 구리에 아연을 합금한 황동을 통틀어 ‘놋그릇’으로 부르는 유기(鍮器)의 살균력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조상들은 미나리의 거머리를 제거하기 위해 놋그릇에 미나리를 담그거나, 그릇에 놋숟가락을 넣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님들이 머리카락을 자를 때 꼭 방짜로 만든 칼을 쓴다. 이유는 자칫 머리를 베이더라도 상처가 덧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주 삭발을 해야하는 스님에게 덧나지 않는 칼은 방짜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방짜에 대해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연구관은 “흔히 두드려서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 과학적으로는 구리 78%에 주석 22%를 합금한, 가장 질 좋은 합금을 일컫는 합금기술 용어”라며 “잡금속을 섞어 질이 떨어지는 합금은 ‘퉁짜(쇠)’로 부른다”고 말한다.

유기는 제작기법에 따라 ‘주물’과 ‘방짜’로 나뉜다. 주물은 구리에 아연과 주석 합금의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기법이고 방짜는 구리와 주석 합금으로, 불에 달구면서 망치나 메로 쳐서 모양을 잡아간다. 특히 방짜로 만든 것은 인체에 해롭지 않아 식기·수저 등에 많이 애용됐고, 소리가 좋아 타악기로도 널리 사용해왔다.

고급 방짜 유기와 주물 유기 모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공출’이라는 이름 아래 전쟁물자로 뺏기는 수난을 겪었고, 해방 후 연탄가스에 변색하기 쉬운 놋쇠의 성질 때문에 양은·스테인리스에 밀려 생활 속에서 멀어지게 됐다.

살균효과와 더불어 독성물질에 반응하고, 음식 맛을 살려주는 기능성으로 인해 ‘건강 그릇’으로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놋그릇. 방짜 도마와 칼 등 주방용기를 이용해온 무형문화재 이봉주 선생의 부인 사준자(70) 여사는 “상추 등 채소도 방짜 그릇에 담아 보관하면 싱싱함이 일반 냉장보관보다 두세배 오래간다”며 “올여름 식중독 걱정을 덜고 싶다면 전통 방짜 유기를 이용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구영일 기자


놋그릇, 이것이 궁금해요
- 전통 놋그릇에 대한 궁금증 몇가지를 알아본다.방짜유기, 얇고 가벼워 편리
■놋그릇은 모두 무겁다?=방짜의 경우 불에 달궈 망치로 얇게 펴서 만들기 때문에 머리카락이나 종잇장처럼 얇게 만들 수도 있다.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 거친 수세미로 닦으면 광택
■기왓장 가루로 닦아야 한다?=약간 거친 수세미를 주방세제와 함께 사용해 닦아주면 유기 고유의 은은한 색이 살아난다. 철 수세미는 절대 사용금지. 다만 방짜는 열에 약해 쉽게 변하므로 설거지할 때도 뜨거운 물은 금물이다.

- 제조공정 까다로워 값 비싸
■값이 만만찮은 이유는?=방짜 유기는 제조 공정상 최소 11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수저 한벌 만드는데도 수백번 넘게 망치질을 해야 한다.방짜 유기는 하나하나가 작품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래서 값이 비싸다.


[잠깐]무형문화재 77호 이봉주 유기장-전통기술 복원 성공 방짜유기 대중화 앞장
“방짜라고 전혀 변색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는데, 백년 전의 방짜 그릇도 새것처럼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릎이 쳐집니다.”

방짜 유기장 이봉주씨(83·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사진)는 관리가 까다롭다는 방짜에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금도 색깔이 변하면 닦아주는 것처럼 방짜도 습기 없이 관리를 잘 하면 오랜 시간 보존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방짜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 비율이 딱 정해져 있어요. 1%만 차이가 나도 깨져 버려요. 비싸게 만들겠다고 금이나 은을 섞어서도 안됩니다”는 이씨는 “방짜는 속일 수가 없다는 뜻에서 ‘틀림없는 사람’에게만 ‘방짜’라는 말을 붙인다”고 말한다.

부산에서 열렸던 ASEM(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 때에도 세계 지도자들의 밥상에 방짜 유기에 식사를 담아냈고, 청와대에서 반상기로 많이 사용하던 방짜 유기는 요즘 건강에 좋다고 소문나자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누가 배우겠다고 찾아오면 ‘밥그릇이나 꽹과리·생활용품은 내가 옛날 방법을 되살려 많이 만들었으니 이제 너희는 건강에 좋은 쇠붙이를 활용해 침 같은 의료기구나 주방기구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고 권한다”는 이씨의 고향은 평북 정주다. 월남한 지 올해로 꼭 60년째다.

방짜 유기를 활성화한 장인으로 평가받는 이씨는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유기장으로 지정됐으며, 전통공예기능보존협회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2003년엔 공장을 경기 안산시에서 경북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로 옮겼다. ☎054-571-3564.
문경=구영일 기자 young1@nongmin.com


[기고]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연구관-“조상의 지혜담긴 놋그릇 오늘날 되살릴만 ”
방짜 유기에는 우리 선조들이 개발한 합금기술과 슬기가 녹아 있다.

현대 과학자들이 세계적인 특허감으로 일컫는 유기의 장점은 우선 황금색을 띠기 때문에 미학적으로 완전한 그릇이라는 점이다. 둘째, 살균기능이 있다는 점이다. 2003년 박종현 교수(경원대)의 분석으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장균의 하나인 O-157균을 죽이는 살균효과가 있음이 밝혀졌으며, 최근엔 허정원 박사(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의 연구로 살균효과가 뛰어남이 입증됐다. 셋째, 농약과 인체에 해로운 가스 등 독성물질에 반응하고, 보온·보냉효과가 좋아 음식의 맛을 살려주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점으로는 자주 닦아줘야 하는 등 관리가 까다롭고, 열에 약하기 때문에 불에 직접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유기의 장점을 현대 과학과 접목시키면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활용방안이 대두될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중금속과 농약 등에 반응하는 점에 착안한다면 검출기, 감지기, 정수기 등 실생활 용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여름이면 창궐하는 비브리오 장염·비브리오 패혈증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는 수족관, 육류·야채 냉장고 등 고기능성 살균냉장고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보온·보냉 기능과 더불어 쓸수록 은은한 황금색상을 활용하여 명품 식기와 타악기를 만들면 세계적인 브랜드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놋그릇에서는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인 구리, 아연과 나트륨·칼륨·마그네슘 등이 미량 검출되는 점에서 기능성 음료 용기와 저장고 등을 개발한다면 현대 사회의 웰빙 열풍과 함께 국민 건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