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희(48) 노래의 매력은 문학적 낭만이다.
인생과 사랑을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하는 듯한
그의 노래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빛깔이 바래지 않는다.
<모닥불 피워 놓고/마주 앉아서/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인생은 연기속에/재를 남기고/말없이 사라지는/모닥불 같은 것…>
(모닥불, 박인희 작사 작곡, 1971년)
「모닥불」은 박인희의 시적 감성을 잘 드러내는 노래이다. 감정을 차분하게 절제한 그의 목소리는 서정시 같은 여성적 감성을 아름답게 전해준다. 아직도 사람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은 인생에 대한 상념과 예감을 부담없는 노랫말과 멜로디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박인희는 숙명여대 불문과에 다니던 1970년 이필원과 함께 혼성 듀엣 「뜨와에 므와(불어 : 너와 나)」를 결성해 가요계에 데뷔했다.「약속」「세월이 가면」등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이 그룹은 72년 박인희의 결혼으로 해체되고, 두 사람은 독립했다.
박인희는 76년까지 여섯장의 앨범과 한 편의 시낭송 음반을 발표 했다. 시낭송 음반에는 「얼굴」과 <한잔의 술을 마시고…>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등이 담겨 있었다. 당시 파격적이었던 이 음반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DJ와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71년 동아방송 「3시의 다이얼」로 시작한 DJ생활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고,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등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방송에 대한 욕심은 아직도 크다.
『가수로 활동했던 기억이 아련할 정도로 DJ로서 더 오랫동안 대중과 만났죠.「가수 박인희」가 오래 기억된 것처럼 방송인으로서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박인희는 우리 나라 최초의 혼성 포크 듀오 '뚜와에무와'에 참가하여 가수의 길로 출발했다.
숙대 불문과를 다니던 그녀의 행로를 말해주듯
'너와 나'란 제목의 불어로 된 이 팀은, 이필원과 그녀가 같이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평론가 이백천과 가수 조경수 등의 후원에 힘입어 탄생되었다.
1960년대 말 나온 이들의 첫 음반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이어 나온 앨범들은 197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1971년엔 중앙일보, 동양방송 등 언론사에서 주는 음악상 시상식을 휩쓸었다.
창작곡과 번안곡을 함께 수록했던 이들은
1집에서는 이필원의 창작곡인 '약속'이 히트했고
2집에서는 '그리운 사람끼리', 3집에서는 '추억'등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뚜와에무와가 해체한 후 솔로로 전향한 박인희는 솔로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모닥불'로 다시 활동을 재기하게 되었다.
그녀는 박건호를 일약 최고의 작사가로 만든 계기가 된
이 곡을 시작으로 '하얀 조가비', '방랑자',
'봄이 오는 길', '얼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서정성의 카리스마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정규 음반 외에도 시 낭송 음반을 발표해
'목마와 숙녀', '얼굴'같은 시도 유행시켰다.
그녀는 총 6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지만
가수활동을 포기하고, 가끔 작곡과 작시만 하며
현재 미국에서 한인방송국의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맨 왼쪽이 박인희씨 그리고 두번째가 이해인 수녀다. 이해인수녀는 학창시절 단짝 친구가 한명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박인희였다고 한다
출처 : 기타가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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